문우당서림의 서가

평산책방의 서가

평산책방도시탐구, 2권 세트
≪도시독법≫과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 저자가 같은 날 출간했고, 내용상 짝을 이루는 책이어서 함께 추천합니다. 저자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미국인이지만 한국을 사랑해서 십 수년간 한국에서 살면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했고, 일본의 대학에서 한국어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번역서가 아니라 그가 한글로 쓴 책인데, 웬만한 한국인들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수준 높은 한글 구사 능력이 놀랍습니다. 이 책들은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고 위기를 극복하며 발전해왔는지, 무엇을 보존하고 재생하며 더 나은 도시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관점을 제공해 줍니다. 세계적인 도시들과 함께 그가 거주했거나 경험한 부산, 서울, 대전, 전주, 대구, 인천, 경주 등 한국의 도시들을 다루고 있어서, 우리의 도시들을 어떻게 보존하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인지 글로벌한 시각과 통찰을 갖게 해줍니다. 그는 원주민을 배제하는 전면철거식 재개발을 반대하고, 소규모 맞춤형 재생사업을 통해 역사와 문화, 공동체적 가치를 보존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한옥 생활을 오래 했을 만큼 한옥을 사랑해서, 서울 서촌의 한옥 보존 운동에 깊이 참여하여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길 만큼 사랑하고, 한국 저술의 지평을 넓혀준 저자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합니다.
2026년 10월 11일 추천
평산책방처음처럼 신영복의 언약
신영복 선생의 유작 <처음처럼>을 읽었습니다. 일주일 넘게 책을 잡고 있습니다. 되도록 느리게 느리게 읽고, 봐야하는 책입니다. 제목과 같은 ‘처음처럼’으로 책이 시작됩니다. ’처음처럼’의 서예글씨와 뜻이 풀이되어 있습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선생은 제가 대선에서 패배해 좌절해 있을 때 ‘처음처럼’ 글씨와 책과 같은 풀이가 그대로 담긴 서예작품을 제게 주셨습니다. 선생이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이었는데, 표구 그대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벽에 걸린 ‘처음처럼’을 볼 때마다 선생이 그 글씨를 주신 뜻을 생각합니다. 선생은 남에게 글씨를 써줄 때 받는 상대를 생각하면서 문구를 골랐습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노무현 대통령 퇴임을 앞두고 선생이 노 대통령에게 써준 글씨입니다. “어리석은 노인의 우직함이 산을 옮깁니다” 라는 풀이가 달려있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거창한 약속이나 구호보다 한걸음, 한걸음 목표를 달성해 가는 우공이산의 심정으로 국정운영에 임하겠다” 고 각오를 밝힌 바 있었습니다. 그 말을 퇴임 때 글씨로 되돌려준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실패라는 참담한 평가를 받으며 쓸쓸히 퇴임하는 노 대통령에게 최고의 위로였습니다. 노 대통령도 그 글씨를 매우 좋아해서 퇴임 후 ’민주주의 2.0’을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릴 때 아이디를 ‘노공이산’으로 했습니다. 선생은 그 전에 노 대통령에게 ’춘풍추상(春風秋霜)‘이란 글씨를 써준 적도 있습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란 풀이가 달려 있었습니다. 남을 대하기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신을 지키기는 가을 서리처럼 엄정하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선생의 당부의 마음이 담겼을 것입니다. ’우공이산’과 ‘춘풍추상’도 <처음처럼>책에 수록돼 있습니다. 저로서는 책을 읽으면서 선생을 뵙는 듯 했습니다. 어떤 글에선 선생의 웃음이 떠오르고, 어떤 글에선 선생의 진지한 표정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벽에 걸린 ’처음처럼‘ 글씨를 볼 때도 선생이 제게 “어이, 처음처럼....잊지마!” 라고 말을 건네오는 것 같습니다
2026년 10월 11일 추천

종이골짜기의 서가

종이골짜기가족관계 특이사항 있음
가족은 어떤 관계로 이루어질까. 나를 낳고 키운 사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 가족을 설명하는 말은 많지만, 그 관계의 깊이와 사연을 모두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영화감독 마민지는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아픈 엄마를 돌보고, 오랜 투병 끝에 엄마를 떠나보낸다.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기록은 자신이 몰랐던 출생의 비밀로 이어진다. 엄마를 잃은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자신의 뿌리와 가족의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책은 애도의 기록이자 한 가족의 감춰진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이 된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는 또 다른 만남과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읽는 동안 가족이란 무엇인지 여러 번 생각했다. 나를 낳아 준 사람과 나를 키워 준 사람은 다를 수 있고, 가족이라고 해서 서로의 모든 것을 아는 것도 아니다. 어떤 관계는 뒤늦게 모습을 드러내고, 어떤 관계는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끝나 버린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사람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뜻밖이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가족의 정의보다 더 여운이 남는게 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고 살아간다는 것. 오늘도 곁에 있는 사람이 내일은 없을 수 있고, 더 묻고 싶었던 것과 함께하고 싶었던 시간은 끝내 남겨질 수 있다는 것. 이별은 언제나 나중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누구에게나 그때가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은 상실을 아름다운 말로 덮거나, 슬픔 끝에 반드시 어떤 깨달음이 기다린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이 겪은 일들을 따라가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남겨진 사람은 그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 준다. 그래서 슬프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매일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기 때문에.
2026년 10월 27일 추천
종이골짜기유한한 삶을 사랑하는 법 : 김상욱, 박준, 서은국, 선우정아, 신형철, 장명숙, 조현철, 최재천, 백경에게 묻다
우리는 좋은 삶을 이야기할 때 무엇을 이루었는지부터 떠올린다. 얼마나 성장했는지, 무엇을 가졌는지, 남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 그런데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 앞에서도 그런 기준은 여전히 중요할까. 정시우는 물리학자 김상욱, 시인 박준, 행복학자 서은국, 문학평론가 신형철, 소방관 백경 등 아홉 사람을 만나 삶의 의미와 행복, 사랑과 상실에 관해 묻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오래 고민해 온 이들의 대답은 저마다 다르지만, 읽다 보면 결국 삶을 이루는 것은 거창한 성취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닿는다. 특히 행복학자 서은국이 말하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관점이 오래 남았다. 인생을 바꿀 만큼 커다란 기쁨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작은 즐거움을 자주 누리는 것. 행복을 특별한 순간에만 허락된 감정으로 생각해 왔다면, 일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수 있겠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만드는 일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일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아홉 사람의 이야기는 삶에 관한 하나의 정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지금껏 어디에 시간을 쓰며 살아왔는지, 앞으로는 무엇에 시간을 건네고 싶은지 생각하게 한다. 유한한 삶을 사랑한다는 건 매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게 소중한 것들을 알아보고 그 곁에 머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2026년 10월 27일 추천

평범한 삶은 어떻게 문학이 되는가

시집책방 조림지의 서가

공간과몰입의 서가

오래된 질문의 서가

오래된 질문하늘 문방구 - 다릿돌읽기
‘어떤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들’ 2026년 10월 17일 ‘오래된 질문’에서 동화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직장에 다니며 동화를 쓰는 김나다랑 작가가 『하늘 문방구』를 들고 독자를 만났습니다. 요즘 공주에서 사회공헌 사업을 펼치고 있는 카카오가 함께해 주었습니다. 청중은 적절하게 모였고, 이야기는 무척 진지했습니다. 어린 시절 문방구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오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자리에 선 분들에게는 자식을 다시 바라보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청중도 아이보다 어른이 훨씬 많았습니다. 동화 작가 북토크는 저희 서점에서 처음이었는데, 동화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의 북토크는 제게 ’누군가에게는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초신성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늙은 별이 폭발하며 번쩍 빛을 내면, 우리는 저기 새 별이 생겼나 고개를 듭니다. 하지만 그 빛은 탄생이 아니라 작별을 고하는 의식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늘의 이 뚜렷한 현상이 16세기까지 동양의 천문학자들에게는 잘 보였고 서양의 천문학자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차이를 만든 것은 눈이 아니라 ‘우주관’이었습니다. 동양의 천문학자들은 하늘의 움직임을 이 세상을 향한 신호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변화를 보고 길흉화복을 점쳤습니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은 밤하늘을 보고 내일, 그리고 얼마 뒤에 벌어질 일을 말하곤 했지요. 서양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천상과 지상을 나누어, 지상은 변화무쌍하지만 천상은 영원불변하다고 보았습니다. 천상은 완벽하고, 완벽한 것은 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양에는 새로 보인 별에 대한 기록이 숱하게 남았지만, 서양에는 거의 없습니다. 서양의 천문학자들도 그 빛을 보았겠지만, 잘못 보았거나 기록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했던 것입니다. 『하늘 문방구』에서 구름은 우리와 하늘 사이를 오가는 전령입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하늘에 전하고, 하늘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수증기가 되어 올라갈 때는 우리 이야기를 가득 담아 가고, 비나 눈이 되어 내릴 때는 하늘의 이야기를 안고 내려오는지도 모릅니다. 여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아이의 마음으로, 동화 작가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밖에도 『비밀실내화』,『친구가 생기는 비밀게임』을 펴낸 김나다랑 작가는 첫 북토크였는데도 진지하고 따뜻하게 자리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작가의 초등 3학년 딸이 대견하게도 책의 원문을 읽어주면서 엄마의 북토크를 도와습니다. 좋은 출발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조금 새롭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지 모릅니다
2026년 10월 22일 추천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평산책방처음처럼 신영복의 언약
신영복 선생의 유작 <처음처럼>을 읽었습니다. 일주일 넘게 책을 잡고 있습니다. 되도록 느리게 느리게 읽고, 봐야하는 책입니다. 제목과 같은 ‘처음처럼’으로 책이 시작됩니다. ’처음처럼’의 서예글씨와 뜻이 풀이되어 있습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선생은 제가 대선에서 패배해 좌절해 있을 때 ‘처음처럼’ 글씨와 책과 같은 풀이가 그대로 담긴 서예작품을 제게 주셨습니다. 선생이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이었는데, 표구 그대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벽에 걸린 ‘처음처럼’을 볼 때마다 선생이 그 글씨를 주신 뜻을 생각합니다. 선생은 남에게 글씨를 써줄 때 받는 상대를 생각하면서 문구를 골랐습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노무현 대통령 퇴임을 앞두고 선생이 노 대통령에게 써준 글씨입니다. “어리석은 노인의 우직함이 산을 옮깁니다” 라는 풀이가 달려있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거창한 약속이나 구호보다 한걸음, 한걸음 목표를 달성해 가는 우공이산의 심정으로 국정운영에 임하겠다” 고 각오를 밝힌 바 있었습니다. 그 말을 퇴임 때 글씨로 되돌려준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실패라는 참담한 평가를 받으며 쓸쓸히 퇴임하는 노 대통령에게 최고의 위로였습니다. 노 대통령도 그 글씨를 매우 좋아해서 퇴임 후 ’민주주의 2.0’을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릴 때 아이디를 ‘노공이산’으로 했습니다. 선생은 그 전에 노 대통령에게 ’춘풍추상(春風秋霜)‘이란 글씨를 써준 적도 있습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란 풀이가 달려 있었습니다. 남을 대하기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신을 지키기는 가을 서리처럼 엄정하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선생의 당부의 마음이 담겼을 것입니다. ’우공이산’과 ‘춘풍추상’도 <처음처럼>책에 수록돼 있습니다. 저로서는 책을 읽으면서 선생을 뵙는 듯 했습니다. 어떤 글에선 선생의 웃음이 떠오르고, 어떤 글에선 선생의 진지한 표정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벽에 걸린 ’처음처럼‘ 글씨를 볼 때도 선생이 제게 “어이, 처음처럼....잊지마!” 라고 말을 건네오는 것 같습니다
2026년 10월 12일 추천

더멀리의 서가

더멀리동네책방 지속 탐구 : 출판평론가 한미화의 동네책방 어제오늘 관찰기+내일의 안녕 염원기
제가 책방을 열기 전, 저 개인에게 있어 동네책방은 참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 동네 책방을 가면 위안을 얻곤 했으니까요. 동네책방은 책을 판매하는 곳을 넘어,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동네책방 지속 탐구》는 한미화 출판평론가가 10여 년 동안 전국의 책방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며 기록한 책입니다. 책방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살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동안 어떤 가치를 만들어왔으며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깊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책을 소개하고 독자를 만나며 지역의 문화를 가꾸어온 책방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네책방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이 책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동네책방을 찾는 독자들에게도 질문을 건넵니다. 우리가 책방을 찾는 이유는 무엇이며, 책방이 사라진 동네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요? 책방을 그저 어려운 공간으로 바라보며 도움을 주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공간으로 바라보자는 제안이 마음에 남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동네책방을 아끼는 분들께, 지금 내가 찾는 이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함께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2026년 10월 19일 추천
더멀리그랬다고 적었다
김애란 작가의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는 우리가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익숙하게 지나쳐 온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입니다. 아버지의 병을 계기로 비로소 알게 된 낯선 얼굴, 어린 시절부터 마음을 사로 잡았던 이야기의 힘, 그리고 평범한 하루 속에 숨겨진 감정과 기억까지.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차분히 기록하면서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삶의 장면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마음 속에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을 안다는 것과 그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는다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빠르게 요약하고 쉽게 판단하는 세상에서 잠시 멈춰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돌아보게 합니다. “타인에게 실망하고, 타인을 지겨워하면서도, 타인을 그리워하는 요즘”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느껴봤을 감정일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고, 서로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니까요.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과 곁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으신 분께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결국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26년 10월 19일 추천

수연서림의 서가

에디션즈의 서가

에디션즈명인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8
2016년 겨울, 2박 3일간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그때만 해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데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 1992년에 절판된 《명인》(솔 출판사, 민병산 역)을 도서관에서 어렵게 구해 여행 가방에 넣었다. 인천, 하네다 공항 대합실에서 읽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판권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딸과 한국어 판권 계약을 맺었다. 계약서에 적힌 가와바타(川端)라는 두 글자를 한참 들여다봤다. 번역은 유숙자 선생에게 부탁했다. 번역료는 보통 단어 수나 원고지 매수로 계산해 선지급한다. 그런데 유 선생은 절반만 그렇게 받고, 나머지는 인세로 받고 싶다고 했다. 가난한 출판사로서는 당장 나갈 돈이 줄어드는 반가운 제안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번역료를 한꺼번에 받으면 책과 인연이 끊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바둑에 관한 소설이다. 바둑을 몰라도 읽는 데 지장은 없다. 업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다. 바둑이 뭐라고 한 사람이 평생을 건다. 그 사람을 명인이라고 부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그랬을 것이다. 책 작업하는 내내 유숙자 선생도 그랬다. 2019년에 책을 출간했다. 이후 판권을 갱신하지 않았다. 2023년 이 책이 민음사에서 다시 나왔다.
2026년 10월 20일 추천
에디션즈일론 머스크
유명 인사의 전기라고 다 잘 읽히는 건 아니다. 헬레니즘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 《알렉산드로스 원정기》는 훌륭한 책이지만, 끝까지 읽기 어렵다. 760페이지나 되는 머스크의 전기를 계속해서 다음 장으로 넘기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월터 아이작슨의 스토리텔링이다. 아이작슨은 세계적인 전기 전문 작가다. 신문 기자 출신으로 《타임》 편집장과 CNN 대표를 지냈다. 헨리 키신저, 벤자민 프랭클린,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전기를 썼다. 전기 작가라면 누구나 슈퍼 셀럽의 전기 집필을 꿈꾼다. 아이작슨은 어떻게 머스크를 설득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머스크가 먼저 제안했다. 미국 아마존 서점에선 아이작슨이 쓴 전기 네 권이 세트로 묶여 팔리고 있다. 세트 제목은 ‘천재들의 전기(The Genius Biographies)’. 프랭클린, 아인슈타인, 잡스, 다빈치 전기로 구성됐다. 이 대열에 끼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이작슨은 단지 유명한 사람의 전기를 쓰는 게 아니다. 과학과 인문학의 교차점에서 창의성을 폭발시킨 천재에 집중한다. 아무나 쓰지 않고, 아무 때나 쓰지도 않는다. 2004년 잡스가 전기 작업을 의뢰했을 때도 처음에는 거절했다. 쓰더라도 잡스가 은퇴한 뒤에 쓸 생각이었다. 그러다 2009년 집필을 결심한다. 잡스가 두 번째 병가를 낸 후였다. 비밀주의에다 고집불통이고 완벽주의자인 잡스는 왜 아이작슨에게 전기 집필을 맡겼을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전기는 대개 좋은 말로 가득하다. 특히 생존 인물의 전기는 더 그렇다. 아이작슨은 다르다. 그는 잡지 황금기였던 1990년대에 시사 주간지 《타임》 편집장을 지냈다. 표지에 항상 사람 사진을 넣는 《타임》은 인물 기사에 강했다. 인물을 통해 시대를 들여다봤다. 아이작슨은 《타임》 출신답게 객관주의 저널리즘에 입각해 전기를 쓴다.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다. 수십 번 만나며 관계를 쌓은 머스크에 대해 “셀럽 병에 걸렸다”고 평가한다. 아이작슨은 전기 인물이 책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작업 시작 전에 조건을 붙인다. “집필 과정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해서는 안 되며 사전에 보여 달라고 해서도 안 된다.” 솔직한 글이라고 모두 잘 읽히는 건 아니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아이작슨이 지향하는 글쓰기는 “설교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설교자는 너무 많고 이야기꾼은 너무 적다.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면 사람들은 스스로 메시지를 얻는다. 아이작슨은 저녁 식사 테이블에 둘러앉아 ‘옛날 옛적에’ 하고 옛이야기 들려주듯 글을 쓴다. 이렇게 쓴 글을 다음 날 아침에 소리 내어 읽으며 쉽고 재밌는지 확인한다. 전형적인 연대순 기술 방식이라 도입부가 강렬하진 않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책장을 덮기 어렵다. 일화와 인용문으로 촘촘하게 짜인 내러티브 덕분이다. 이런 내러티브는 성실한 인터뷰, 자료 조사, 관찰에서 나온다. 성경부터 오디세이, 허클베리 핀까지 모든 위대한 글은 일화로 이뤄져 있다. 인터뷰가 깊을수록 일화가 풍성해지고, 일화가 다채로울수록 인물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아이작슨은 잡스 전기를 쓰기 위해 18개월 동안 잡스를 40여 차례 인터뷰했다. 집에서 인터뷰하고, 산책이나 드라이브를 하며 대화했다. 전화와 문자도 수시로 했다. 잡스가 들려준 이야기를 확인하고 더 구체화하기 위해 100명이 넘는 잡스의 친구, 친척, 동료를 인터뷰했다. 잡스가 버렸거나 잡스에게 분노한 사람까지 만났다. 잡스와 대립했고 급기야 잡스를 애플에서 내쫓은 앙숙 존 스컬리 전 애플 CEO, 애플을 공동 창업했지만 관계가 틀어진 워즈니악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솔직한 심정을 끌어내 잡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렸다. 취재와 조사의 교차점에서 아이작슨의 글이 나온다. 전기 작업에는 두 가지 유형의 글쓰기가 있다. 정보를 잘 파헤치는 기자 유형이 있고, 기록물 보관소를 뒤져 문서를 찾는 데 능숙한 학자 유형이 있다. 두 유형에 걸쳐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아이작슨은 말한다. “나는 몇몇 사람들만큼 좋은 학자가 아닐 수 있고 몇몇 사람들만큼 좋은 기자가 아닐 수 있지만,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었다.” 그가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전기를 잘 쓸 수 있었던 이유다. 다빈치 전기를 쓸 때 아이작슨은 그가 남긴 7200페이지에 달하는 노트의 원본을 한 장 한 장 살폈다. 키신저와 프랭클린 전기를 쓸 때도 수많은 노트와 메모, 정부 기록물을 뒤졌다. 아이작슨은 취재와 조사로 글의 뼈대를 만들고, 관찰로 살을 채워 넣는다. 그의 글은 중립적이다. 뚜렷한 방향성이 없다. 인물의 일상을 관찰하고, 관찰한 대로 기술한다. 설교하지 않고 이야기를 ‘보여’ 준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자 유전자 편집 기술의 선구자인 제니퍼 다우드나의 전기를 쓸 때는 다우드나의 연구실에서 그가 하는 일을 옆에 붙어 가만히 지켜봤다. 머스크와도 2년간 매달 한 번씩 함께 시간을 보냈다. 스페이스X 공장에서, 테슬라 공장에서, 회의실에서 그를 따라다니며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관찰했다. 여기서 생생한 스토리텔링이 나온다. 트위터를 인수한 이유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인수 전날 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여 주는 것. 이게 아이작슨의 방식이다. 판단은 독자가 내린다. 키신저 전기를 쓸 때 아이작슨은 《타임》 기자였다. 프랭클린 전기를 쓸 때는 CNN 대표였다. 아인슈타인, 잡스, 다빈치 전기는 아스펜연구소 회장 재임 시절에 나왔다. 다우드나, 머스크 전기는 툴레인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썼다. 그의 책은 사이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부업으로 열 권의 책을 썼고, 게다가 평단과 대중이 호평하는 책을 썼고, 심지어 1000페이지에 가까운 벽돌 책을 썼다. 놀라운 저작 활동은 평범한 저녁 시간에 이뤄졌다. 아이작슨은 TV를 보지 않는다. “TV를 포기하면 오후 7시부터 오전 1시 사이에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울 정도”라고 말한다. 또 언제 어디서나 메모한다. 71세의 나이에도 공항에서 비행기가 연착되면 핸드폰을 꺼내 글을 쓴다. 아이작슨의 글쓰기 원칙을 정리하면 이렇다. 좋은 주제를 선정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취재하고, 학자처럼 꼼꼼하게 조사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이야기하듯 들려주고, 솔직한 문장을 꾸준히 쓰는 것. 이 원칙만 지켜도 좋은 글이 된다. 그러나 훌륭한 글을 원한다면 기술적 방법 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글을 쓰게 하는 마음, 즉 호기심이다. 아이작슨은 천재들의 삶이 우리 모두의 삶과 얼마나 똑같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이 호기심이 그의 글을 특별하게 만든다. 아인슈타인이 전 세계를 뒤흔들 위대한 과학 이론에 몰두하는 동안, 그는 초과 근무와 박봉을 불평했고 이혼과 자녀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아이작슨은 천재를 별종이 아니라 우리처럼 결점 있는 한 인간으로 그린다. 많은 사람이 그의 다음 책을 벌써 기다리는 이유다.
2026년 10월 15일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