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들의 추천

종이골짜기일의 감각
감각은 타고나는 것일까, 길러지는 것일까. 조수용은 《일의 감각》에서 좋은 결과를 만드는 힘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보다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질문하고,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는 태도에 있다고 말한다.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에서 출발해 자신의 취향을 깊이 파고들고, 그 취향이 타인과 만나는 지점을 찾는 일. 그 과정이 감각을 만들고, 감각은 결국 일의 방향을 결정한다.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습니다.” 이 문장이 오래 남았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일, 유행이나 겉모습보다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를 먼저 묻는 일. 저자가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결국 본질을 찾으려는 집요함이다. 브랜딩 역시 그럴듯한 포장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만의 소신을 발견하고 꾸준히 지켜가는 과정에 가깝다. 이 책을 읽으며 감각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타고난 재능보다 무엇을 얼마나 오래 들여다보았는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의 감각을 흉내 내기보다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익숙한 답에 안주하지 않으며, 매번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는 것. 결국 좋은 일을 해내는 힘은 그런 태도가 쌓여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자기만의 감각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2026년 10월 21일 추천
에디션즈명인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8
2016년 겨울, 2박 3일간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그때만 해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데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 1992년에 절판된 《명인》(솔 출판사, 민병산 역)을 도서관에서 어렵게 구해 여행 가방에 넣었다. 인천, 하네다 공항 대합실에서 읽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판권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딸과 한국어 판권 계약을 맺었다. 계약서에 적힌 가와바타(川端)라는 두 글자를 한참 들여다봤다. 번역은 유숙자 선생에게 부탁했다. 번역료는 보통 단어 수나 원고지 매수로 계산해 선지급한다. 그런데 유 선생은 절반만 그렇게 받고, 나머지는 인세로 받고 싶다고 했다. 가난한 출판사로서는 당장 나갈 돈이 줄어드는 반가운 제안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번역료를 한꺼번에 받으면 책과 인연이 끊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바둑에 관한 소설이다. 바둑을 몰라도 읽는 데 지장은 없다. 업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다. 바둑이 뭐라고 한 사람이 평생을 건다. 그 사람을 명인이라고 부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그랬을 것이다. 책 작업하는 내내 유숙자 선생도 그랬다. 2019년에 책을 출간했다. 이후 판권을 갱신하지 않았다. 2023년 이 책이 민음사에서 다시 나왔다.
2026년 10월 19일 추천
종이골짜기일억 번째 여름 - 소설Y
계절이 여름에서 멈춰 버린 세계. 끝나지 않는 폭염과 자연재해, 일억 번째 여름이 오면 한 종족이 멸망한다는 예언. 이 기묘한 세계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주홍과 이록이 길을 나서면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여정을 함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드러난다. 미미족의 족장 주홍은 강인한 몸을 가졌지만 고대어를 읽지 못하고, 고대어 해석가 이록은 누구보다 많은 것을 읽어 낼 수 있지만 혼자서는 걸을 수 없다. 주홍은 이록을 업고 길을 나서고, 이록은 주홍이 갈 길을 알려 준다. 두 사람의 모습이 좋았던 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으로는 건널 수 없는 구간이 있고, 함께 걷는다는 건 때로 상대의 무게까지 기꺼이 짊어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살아남으려는 마음과 지키려는 마음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기도 하고, 저마다의 선택은 또 다른 갈등을 불러온다. 그럼에도 인물들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멸망을 앞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낯설게 느껴지다가도, 그 마음만큼은 어쩐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세상의 끝을 앞두고도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대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거대한 세계관 속에서 그런 마음들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세계와 그 안에서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읽어 보길 권한다.
2026년 10월 19일 추천
더멀리동네책방 지속 탐구 : 출판평론가 한미화의 동네책방 어제오늘 관찰기+내일의 안녕 염원기
제가 책방을 열기 전, 저 개인에게 있어 동네책방은 참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 동네 책방을 가면 위안을 얻곤 했으니까요. 동네책방은 책을 판매하는 곳을 넘어,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동네책방 지속 탐구》는 한미화 출판평론가가 10여 년 동안 전국의 책방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며 기록한 책입니다. 책방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살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동안 어떤 가치를 만들어왔으며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깊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책을 소개하고 독자를 만나며 지역의 문화를 가꾸어온 책방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네책방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이 책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동네책방을 찾는 독자들에게도 질문을 건넵니다. 우리가 책방을 찾는 이유는 무엇이며, 책방이 사라진 동네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요? 책방을 그저 어려운 공간으로 바라보며 도움을 주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공간으로 바라보자는 제안이 마음에 남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동네책방을 아끼는 분들께, 지금 내가 찾는 이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함께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2026년 10월 19일 추천
더멀리그랬다고 적었다
김애란 작가의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는 우리가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익숙하게 지나쳐 온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입니다. 아버지의 병을 계기로 비로소 알게 된 낯선 얼굴, 어린 시절부터 마음을 사로 잡았던 이야기의 힘, 그리고 평범한 하루 속에 숨겨진 감정과 기억까지.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차분히 기록하면서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삶의 장면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마음 속에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을 안다는 것과 그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는다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빠르게 요약하고 쉽게 판단하는 세상에서 잠시 멈춰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돌아보게 합니다. “타인에게 실망하고, 타인을 지겨워하면서도, 타인을 그리워하는 요즘”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느껴봤을 감정일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고, 서로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니까요.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과 곁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으신 분께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결국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26년 10월 19일 추천
에디션즈일론 머스크
유명 인사의 전기라고 다 잘 읽히는 건 아니다. 헬레니즘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 《알렉산드로스 원정기》는 훌륭한 책이지만, 끝까지 읽기 어렵다. 760페이지나 되는 머스크의 전기를 계속해서 다음 장으로 넘기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월터 아이작슨의 스토리텔링이다. 아이작슨은 세계적인 전기 전문 작가다. 신문 기자 출신으로 《타임》 편집장과 CNN 대표를 지냈다. 헨리 키신저, 벤자민 프랭클린,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전기를 썼다. 전기 작가라면 누구나 슈퍼 셀럽의 전기 집필을 꿈꾼다. 아이작슨은 어떻게 머스크를 설득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머스크가 먼저 제안했다. 미국 아마존 서점에선 아이작슨이 쓴 전기 네 권이 세트로 묶여 팔리고 있다. 세트 제목은 ‘천재들의 전기(The Genius Biographies)’. 프랭클린, 아인슈타인, 잡스, 다빈치 전기로 구성됐다. 이 대열에 끼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이작슨은 단지 유명한 사람의 전기를 쓰는 게 아니다. 과학과 인문학의 교차점에서 창의성을 폭발시킨 천재에 집중한다. 아무나 쓰지 않고, 아무 때나 쓰지도 않는다. 2004년 잡스가 전기 작업을 의뢰했을 때도 처음에는 거절했다. 쓰더라도 잡스가 은퇴한 뒤에 쓸 생각이었다. 그러다 2009년 집필을 결심한다. 잡스가 두 번째 병가를 낸 후였다. 비밀주의에다 고집불통이고 완벽주의자인 잡스는 왜 아이작슨에게 전기 집필을 맡겼을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전기는 대개 좋은 말로 가득하다. 특히 생존 인물의 전기는 더 그렇다. 아이작슨은 다르다. 그는 잡지 황금기였던 1990년대에 시사 주간지 《타임》 편집장을 지냈다. 표지에 항상 사람 사진을 넣는 《타임》은 인물 기사에 강했다. 인물을 통해 시대를 들여다봤다. 아이작슨은 《타임》 출신답게 객관주의 저널리즘에 입각해 전기를 쓴다.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다. 수십 번 만나며 관계를 쌓은 머스크에 대해 “셀럽 병에 걸렸다”고 평가한다. 아이작슨은 전기 인물이 책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작업 시작 전에 조건을 붙인다. “집필 과정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해서는 안 되며 사전에 보여 달라고 해서도 안 된다.” 솔직한 글이라고 모두 잘 읽히는 건 아니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아이작슨이 지향하는 글쓰기는 “설교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설교자는 너무 많고 이야기꾼은 너무 적다.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면 사람들은 스스로 메시지를 얻는다. 아이작슨은 저녁 식사 테이블에 둘러앉아 ‘옛날 옛적에’ 하고 옛이야기 들려주듯 글을 쓴다. 이렇게 쓴 글을 다음 날 아침에 소리 내어 읽으며 쉽고 재밌는지 확인한다. 전형적인 연대순 기술 방식이라 도입부가 강렬하진 않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책장을 덮기 어렵다. 일화와 인용문으로 촘촘하게 짜인 내러티브 덕분이다. 이런 내러티브는 성실한 인터뷰, 자료 조사, 관찰에서 나온다. 성경부터 오디세이, 허클베리 핀까지 모든 위대한 글은 일화로 이뤄져 있다. 인터뷰가 깊을수록 일화가 풍성해지고, 일화가 다채로울수록 인물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아이작슨은 잡스 전기를 쓰기 위해 18개월 동안 잡스를 40여 차례 인터뷰했다. 집에서 인터뷰하고, 산책이나 드라이브를 하며 대화했다. 전화와 문자도 수시로 했다. 잡스가 들려준 이야기를 확인하고 더 구체화하기 위해 100명이 넘는 잡스의 친구, 친척, 동료를 인터뷰했다. 잡스가 버렸거나 잡스에게 분노한 사람까지 만났다. 잡스와 대립했고 급기야 잡스를 애플에서 내쫓은 앙숙 존 스컬리 전 애플 CEO, 애플을 공동 창업했지만 관계가 틀어진 워즈니악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솔직한 심정을 끌어내 잡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렸다. 취재와 조사의 교차점에서 아이작슨의 글이 나온다. 전기 작업에는 두 가지 유형의 글쓰기가 있다. 정보를 잘 파헤치는 기자 유형이 있고, 기록물 보관소를 뒤져 문서를 찾는 데 능숙한 학자 유형이 있다. 두 유형에 걸쳐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아이작슨은 말한다. “나는 몇몇 사람들만큼 좋은 학자가 아닐 수 있고 몇몇 사람들만큼 좋은 기자가 아닐 수 있지만,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었다.” 그가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전기를 잘 쓸 수 있었던 이유다. 다빈치 전기를 쓸 때 아이작슨은 그가 남긴 7200페이지에 달하는 노트의 원본을 한 장 한 장 살폈다. 키신저와 프랭클린 전기를 쓸 때도 수많은 노트와 메모, 정부 기록물을 뒤졌다. 아이작슨은 취재와 조사로 글의 뼈대를 만들고, 관찰로 살을 채워 넣는다. 그의 글은 중립적이다. 뚜렷한 방향성이 없다. 인물의 일상을 관찰하고, 관찰한 대로 기술한다. 설교하지 않고 이야기를 ‘보여’ 준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자 유전자 편집 기술의 선구자인 제니퍼 다우드나의 전기를 쓸 때는 다우드나의 연구실에서 그가 하는 일을 옆에 붙어 가만히 지켜봤다. 머스크와도 2년간 매달 한 번씩 함께 시간을 보냈다. 스페이스X 공장에서, 테슬라 공장에서, 회의실에서 그를 따라다니며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관찰했다. 여기서 생생한 스토리텔링이 나온다. 트위터를 인수한 이유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인수 전날 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여 주는 것. 이게 아이작슨의 방식이다. 판단은 독자가 내린다. 키신저 전기를 쓸 때 아이작슨은 《타임》 기자였다. 프랭클린 전기를 쓸 때는 CNN 대표였다. 아인슈타인, 잡스, 다빈치 전기는 아스펜연구소 회장 재임 시절에 나왔다. 다우드나, 머스크 전기는 툴레인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썼다. 그의 책은 사이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부업으로 열 권의 책을 썼고, 게다가 평단과 대중이 호평하는 책을 썼고, 심지어 1000페이지에 가까운 벽돌 책을 썼다. 놀라운 저작 활동은 평범한 저녁 시간에 이뤄졌다. 아이작슨은 TV를 보지 않는다. “TV를 포기하면 오후 7시부터 오전 1시 사이에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울 정도”라고 말한다. 또 언제 어디서나 메모한다. 71세의 나이에도 공항에서 비행기가 연착되면 핸드폰을 꺼내 글을 쓴다. 아이작슨의 글쓰기 원칙을 정리하면 이렇다. 좋은 주제를 선정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취재하고, 학자처럼 꼼꼼하게 조사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이야기하듯 들려주고, 솔직한 문장을 꾸준히 쓰는 것. 이 원칙만 지켜도 좋은 글이 된다. 그러나 훌륭한 글을 원한다면 기술적 방법 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글을 쓰게 하는 마음, 즉 호기심이다. 아이작슨은 천재들의 삶이 우리 모두의 삶과 얼마나 똑같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이 호기심이 그의 글을 특별하게 만든다. 아인슈타인이 전 세계를 뒤흔들 위대한 과학 이론에 몰두하는 동안, 그는 초과 근무와 박봉을 불평했고 이혼과 자녀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아이작슨은 천재를 별종이 아니라 우리처럼 결점 있는 한 인간으로 그린다. 많은 사람이 그의 다음 책을 벌써 기다리는 이유다.
2026년 10월 14일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