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지내던 자신만의 ‘오래된 질문’을 꺼내 보는 공간입니다. 공주 제민천변의 나태주 골목길 시작 지점에 있습니다. 철학책을 중심으로 인문학 서적들을 구비했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사유에 빠져들도록 핸드드립 커피, 수제 레몬차, 캐모마일 등 다양한 차들도 준비했습니다. 1963년 지어진 현대 한옥을 리모델링 했습니다. EBS 프로그램 ‘집 탐구’의 메인참여자였던 가온건축 임형남-노은주 건축사 부부께서 설계해 주셨습니다. 자연미술의 거장인 고승현 작가께서 시공 해주셨습니다. 사유와 담론이 있고, 휴식과 위안이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주소
충남 공주시 대통1길 56-5 (반죽동), 오래된 질문
월, 화 휴무입니다

오래된 질문의 서가

추천 11편
데미안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공주의 저희 서점 ‘오래된 질문’에 들어가면 ‘오래된 질문의 질문’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마음을 잡아 당기는 대목이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있고, 데미안에서는 첫 구절에 해당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속의 그 것을 살아 보는 것이 왜 그다지도 어려웠을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다지도 어려웠을까?” 아래는 ‘오래된 질문의 질문’이라는 글의 전문입니다 러셀은『서양철학사』에서 인류가 감각과 생각을 갖게 된 후 끝도 없이 제기해온 ‘오래된 질문’들을 탐색합니다. “우리의 외부 세계는 존재하나?” “신은 존재하고 전능한가, 그렇다면 악과 불행은 왜 존재하나?” “무엇이 옳고 그른가, 그건 누가 판별하나?“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이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나?” “대체 인생은 뭔가, 거기에 의미란 있나, 있다면 뭔가…?” 헤세는 다소 다른 맥락의 ‘오래된 질문’을 흔들어 깨웁니다. 그의 『데미안』에서 회한인지, 질문인지 모를 화두를 던집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다지도 어려웠을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오래된 질문’은 무엇입니까?
2026년 9월 24일 추천
건축의 K : 건축가의 시선으로 읽는 K문화, 그리고 K건축 이야기
얼마 전(9월 17일) 공주의 우리 서점 ‘오래된 질문’에서 이 책 저자들이 북토크를 했습니다. ‘건축의 K’를 사전에 읽어 보았는데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천일야화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꾸며진 ‘한국 건축학 개론’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건축물을 짓는 겁니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겨나는 것이란 한국 건축의 정수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은 춘천에 지은 제따와나 선원 처럼 이전에 볼 수 없었든 건축물을 짓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찰을 지은 것이 아니라 ‘혁신’을 지은 것이었습니다. 그날 북토크 후기가 곧 추천평입니다. 아래에 놓아 두었습니다 ----추천평 또는 북토크 후기--- 어릴 적 살던 시골에는 TV가 있는 곳이 둘이었습니다. 한곳은 초등학교 숙직실이었고, 다른 한곳은 재철(가명)이 형네 집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 올라가 공장엘 다니던 재철이 형 누나들이 TV를 집에 안겼습니다. 중학교 안 보내줬다고 원망만 할 법도 한데…. 김일 프로레슬링 경기가 열리는 날 재철이형 네 집은 붐볐습니다. 마을 사람들 누구나 좀 조아려가면서라도 이 경기만큼은 놓지치 않고 싶어 했습니다. TV 수상기가 마루로 나왔고 마당에는 멍석이 깔렸습니다. 재철이형 아버지의 헛기침 위세가 이어졌습니다. 17일 저녁 임형남-노은주 건축가가 저희 서점 ‘오래된 질문’에서 북토크를 열면서 김일 선수 레슬링 경기를 보던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참가자가 많아지는 바람에 마당 한가운데에 돗자리가 깔린 모습을 이른 말입니다. 가온건축을 운영하는 두 건축가는 서양미술을 전공했지만 한국건축에 진심입니다. 그 진심을 최근 펴낸 ‘건축의 K’에 오롯이 담았습니다. 한국건축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두 건축가가 강연 머리에 소개한 이야기는 한국 건축의 정신을 핵심적으로 드러내 줍니다. “찻잔 받침을 만들 때, 일본 장인은 전국을 다니면서 진짜 좋은 나무를 구하고, 그걸 오랜 시간 건조시키고, 좋은 연장을 골라 목욕재계하고 정성스럽게 파서 완성한 다음 그걸 놓고 차를 마시며 완상합니다. 반면 조선의 장인은 오른손을 뻗어 잡히는 아무 나무나 줍고, 왼손을 뻗어 잡히는 아무 연장을 들고 막 파서, 금세 완성하고 탁 던져놓는다고 합니다. 일본의 공예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조선의 경우에는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장인들은 한국 장인이 만든 물건에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낀답니다. 아마도 그 무언가는 자연스러움을 말하는 듯 합니다.” 그 자연스러움은 이질적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두 건축가가 제주의 김녕 바닷가에 지은 ‘까사 가이아(Casa Gaia, 사진)’는 그 전형적인 반영입니다. 바다를 가리지도 않게, 멀리에 봉긋한 오름에 부딪치지 않게 지었습니다. 그 결과,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집이 됐습니다. 왜 이런 건축을 하는지에 대한 두 건축가의 설명은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기후변화 시대라는데, 서양의 어느 사상이 우리 조상만큼 자연친화적이고, 상생적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건축이란 땅에 신세를 지는 일입니다. 오랜 시간 바람과 햇빛만을 얹고 지내던 땅을 건드리고 그 위에 제법 무거운 구조물을 얹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땅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개토제를 지내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고유제를 지냈습니다.” 두 건축사는 통념을 깨는 건축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 파격은 춘천에 지은 사찰 제따와나 선원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이건 ‘사찰’을 지었다기 보다 ‘혁신’을 지었다는 편이 옳을 겁니다. 30만장의 벽돌만으로 지어 서양의 고대 유적을 연상하게 합니다. 사찰의 그 어디에도 한옥 지붕과 한옥 기와가 보이질 않습니다. 현대식으로 지었지만 저변에 깔린 구조와 정신은 불교의 전통을 빠짐없이 구현했습니다. “기존 사찰과 모양은 완전히 다르지만, 구례 화엄사처럼 세 번 꺾어져 들어가는 전통 가람 배치를 반영했습니다. 종교 공간의 본질을 어디론가 들어가서 누구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건 스승일 수 있고 신일 수 있습니다. 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나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배치를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제따와나 선원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자연스러움이라는 한국 건축의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하는지도 모릅니다. 제따와나는 제다 왕자의 숲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기원정사(祇園精舍)라고 합니다. 그 기원정사에 한옥지붕과 한옥기와가 있었을 리 없습니다. 이런 고정관념을 물리친 사찰은 주지인 일묵스님의 대도량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합니다. 두 건축가의 제안에 단 한 번의 거부 반응도 없었다고 합니다. 일묵 스님은 서울대 수학과 박사과정 중이던 1990년대 중반 “죽음이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세속 공부를 계속할 의미가 없다”며 홀연 잿빛 승복을 입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또는 이후에 서울대 불교학생회 회원들이 10여명 집단 출가해 신문에 대서특필된 바 있습니다. 이들을 구도의 길로 이끈 책이 ‘대자유인’이었다고 합니다. 두 건축가의 설명처럼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놓아두는 것이 한국 건축이라면 어딘가 닮아 있습니다. 프랑스 국빈 만찬 무대에서 재킷과 구두를 차례로 벗어던지고 맨발로 노래하던 K팝 가수 화사도 이런 DNA를 가졌겠죠.
2026년 9월 24일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