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책방의 추천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모처럼 소설책을 추천합니다. <저주토끼>로 부커상과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자전적 SF소설입니다. 진지하면서도 무척 유쾌하고 재미있습니다. 대담한 상상력과 유머 있는 글솜씨가 주는 재미입니다. 소설 제목이 문어,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인 6편의 연작단편소설이 담겨있습니다. 작가가 대부분 실화라고 밝힌 자전적인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면서 소설 제목의 해양생물들을 외계생명체로 설정하여 현실세계와 SF세계를 넘나드는 구성이 경이롭고 환상적입니다.

시간강사와 비정규직 노동자, 정리해고, 장애인의 이동권, 기후위기, 핵폐수 방류로 인한 해양오염 등 묵직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비판의식과 저항의식이 소설마다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읽기에 무겁지 않고, 재미와 공감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진지한 주제를 재미있게 전달해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자한 작가의 의도가 멋지게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위기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역시 사랑입니다. 대학시간강사로 비정규교수노조원이 되어 천막농성에 참여했던 주인공이 농성을 이끈 노조위원장과 부부가 되고, 함께 연대투쟁에 참여하면서 또 함께 외계생물체를 만나면서 보여주는 동지적인 신뢰와 사랑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두 사람이 외롭지 않으며,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더라도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입니다. 가족들을 사랑하면서 왕성한 작품발표와 강연, 집회참가 등으로 사회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정보라 작가의 활동에 응원을 보냅니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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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저항하고 사랑하는 작가 정보라의 첫 자전적 SF소설

당신의 손을 맞잡고 망가진 세상과 맞서며 함께 꾸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진심의 사랑

“이토록 천연덕스럽게 섬뜩한 소설이 또 있을까.” (황인찬, 시인) “때때로 현실이 소설보다 더 터무니없고 더 마술적이고 더 잔혹할 수 있잖아요.” (정보라 인터뷰에서)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에 이어 2023년 국내 최초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정보라가 해양 생물을 주제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SF연작소설을 선보인다. 작가 본인이 살고 있는 바다 도시 포항의 풍경과 더불어, 그의 가족과 이웃, 친구와 똑 닮은 인물들의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가 담긴다. 수록된 여섯 편의 이야기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치열한 투쟁과 투병을 이어온 기록이자,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약한 손을 마주 잡고 깊은 사랑을 나눠온 장면의 모음이다.

자꾸만 말하는 해양 (외계) 생물과 마주치는 ‘나’와 ‘남편(위원장님)’은 정체 모를 검은 양복 군단에게 연행되지만, 기묘한 사건들에 휘말리는 와중에도 이들은 “열받으니까” 잘못된 일에 목소리를 내고 시대의 불합리와 대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물들의 코믹한 행보와, 분노가 가득 담긴 ‘속사포 랩’ 같은 문체를 따라 읽다 보면 절로 웃음이 터지지만, 작가가 겨냥하는 주제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해고 처분과 장애인의 이동권을 무시한 시설, 작은 나라의 이권을 호시탐탐 노리는 21세기 제국주의, 잔인한 해양 생태계 파괴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다양한 현안이 다뤄지며 이에 맞서 조금씩 세계의 변화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용기 있는 걸음을 보여준다.

문어 | 대게 | 상어 | 개복치 | 해파리 | 고래

작가의 말

저자 : 정보라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아나대에서 러시아문학과 폴란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연세문화상에 〈머리〉가, 2008년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에 〈호(狐)〉가 당선되었으며, 2014년 〈씨앗〉으로 제1회 SF어워드 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고, 이듬해 국내 최초로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저주토끼》 《여자들의 왕》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한밤의 시간표》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장편소설 《문이 열렸다》 《죽은 자의 꿈》 《붉은 칼》 《호》 《고통에 관하여》 《밤이 오면 우리는》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거장과 마르가리타》 《탐욕》 《창백한 말》 《어머니》 《로봇 동화》 등이 있다. 접기

“항복하면 죽는다. 우리는 다 같이 살아야 한다.”

직접 움직이고 실천하는 소설가 정보라의 진실한 픽션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자였던 작가님께 메시지를 받았다. 올해 최종 후보자들이 시상식에서 가자지구 학살 반대 성명을 낼 계획인데 참여하겠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당장 동의했다. (…) 시상식 당일, 저스틴 토레스 작가가 소설 부문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토레스 작가는 수상 소감을 짧게 끊고 우리를 모두 무대 위로 불렀다. 빌랄 작가가 앞에 나서서 성명문을 읽었다.(정보라 칼럼,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을 멈춰라〉, 『여성신문』 2023년 11월 22일 자)

2023년 가을, 작가 정보라는 『저주토끼』가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 후보에 올라 뉴욕으로 향했다. 맨해튼 공공도서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그는 길에서 사탕을 팔고 있던 열 살배기 아이를 본 일에 관해 이야기하며 “이런 일들은 나를 화나게 만들고, 화가 날 때 글을 쓴다”라고 말했다. 시상식에서 그는 가자지구 학살 반대 성명을 낭독하는 자리에 함께했고, 폴란드 크라쿠프 중앙광장에서도 팔레스타인 내 집단 학살을 규탄하는 시위에 함께했다.

‘사실보다 더 진실한 이야기’라는 소설의 성격에 충실한 정보라의 첫 자전적 연작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는 해양 (외계) 생물이 출몰하는 여섯 편의 소설이 모였지만 우리 세계의 모순을 거울처럼 비춰낸다. 노동, 장애, 기후와 생태 등의 이슈가 단지 머릿속 구호로 멈추지 않고 실제 거리에 나가 땡볕이나 추위를 견디며 목소리를 내온 작가의 행보가 생생하게 녹아 있다. 격발하는 분노를 담은 거친 문장들이 『저주토끼』를 비롯한 많은 전작과 닮았지만, “이 소설의 대부분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작가가 2020년대를 지나오며 느낀 솔직한 고민과 남편을 만나 사랑하게 된 시절의 흔적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한편 종잡을 수 없는 서사가 펼쳐지며 외계 존재와의 조우로 코믹한 장면이 연출된다는 점에서 독특한 매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바위에 부딪혀 부서져도 다시 솟구치는 파도처럼

나는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나의 천직이었다. 학생은 선생이 없어도 스스로 배우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학생이다. 그러나 선생은 학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학생들을 사랑했고 강단을 사랑했고 교육의 가치를 진심으로 믿었다. 그것이 내 존재의 의미였다. 그러므로 싸워보지도 않고 학교가 원하는 대로 조용히 사라져줄 수는 없었다. (〈문어〉, pp. 18~19)

예전엔 학생들의 강의를 한다는 것이 제 삶을 완전히 결정했어요. 철도 민영화나 세월호 서명 나간 것도 그것 때문이었고, 학생들을 마주 볼 때에 떳떳하고 싶어서였고, (...) 학생들 앞에서 저는 책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정보라 인터뷰에서, 『한겨레』 2022년 7월 16일 자)

이 책은 강사법 개정과 팬데믹 이후 대학에서 비정규직 강사들을 대량으로 해고하는 사태를 배경으로 한 〈문어〉에서 시작된다. 한밤중 대학 본관에 나타난 문어는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라고 엄숙하게 외치지만, 농성 천막을 홀로 지키던 위원장님은 잠결에 이 문어를 잡아 라면에 넣어 먹으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고 있다. 실제로 이 소설의 초반 5~6쪽은 2021년 모 대학교 농성장에서 썼으며, 강단과 학생을 향한 작가의 짙은 그리움도 드러나 있다. 연작은 이주 노동자와 해양 생태계를 근심하는 동시에 새로 만난 가족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내는 〈대게〉와 〈상어〉로 이어진다. ‘이길 것 같지 않아도’ ‘도망칠 곳이 없어도’ 싸워야 한다는 남편과의 단단한 유대감이 이해되면서, 암 투병 중인 그를 잃을 수 없는 작가의 절박한 마음도 읽어낼 수 있다. 이어지는 소설 〈개복치〉에서는 인형과 게임을 좋아하는 선우의 바닷속 탐험을 다루며 남들과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기에 각자의 삶의 방식을 찾으면 된다는 따뜻한 조언을 건넨다. 마지막으로 우주해파리와의 접촉 이후 검은 정장 입은 사람들의 진실을 알아가는 여정이 담긴 〈해파리〉와 〈고래〉로 정보라의 해양 생물 연작은 끝을 맺는다.

여섯 종의 해양 생물과 얽혀 갑자기 연행되고 억류되기를 반복하지만, ‘나’와 ‘남편(위원장님)’은 인간 종을 넘어서 여러 생명체와 연대하며 견고한 바위 같은 어려움에 부딪혀도 저항을 이어나간다. 이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고 거리에서 손을 마주 잡고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평화를 위해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름반도를 점유한 이후 크름반도의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인근 흑해 바닥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알기로 구멍을 스물여섯 개 정도 뚫었다는데 크름반도의 물 부족 문제가 해결됐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고 우크라이나 측에서 크름반도로 식수를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는데 러시아는 물론 거절했다. (〈대게〉, p. 64)

소금값은 벌써 몇 달 전부터 통제 불가능하게 치솟았다. 평생 먹을 소금을 미리 사놓을 수는 없다. 그리고 해수는 지구를 순환한다. 바닷물이 오염되면 우리는 다 죽는다. (〈고래〉, p. 223)

이 이야기는 시간강사 당사자로서 처우 개선을 위해 싸웠던 서울의 이야기에서부터 포항에서의 생활과 연대의 기록을 담아 지역적인 사건들로 구성되는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일본의 원전 폐수 방류까지 국제적인 문제에 관한 입장도 드러나 있다. 세계가 무너질 때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지구가 망가지면 모든 생물이 터전을 잃는다는 자명한 사실에서 비롯한 흐름일 것이다.

작품 속 문어는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라고 집요하게 외치고, “세상은 왠지 점점 나빠지는 것 같다”고, “혼자서 대항할 방법이 없다. 속상하다”며 작가도 근심하지만, 이 책을 덮고 나면 “항복하면 죽는다. 우리는 다 같이 살아야 한다”(pp. 263~266)는 메시지가 선명해진다. 책장을 덮고 나면 모두가 쫓겨나지 않고 굶주리지 않으며 자유롭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부지런히 평화를 위해 싸우는 지구 생물체 모두 행복하길 빌어보게 된다.

ISBN
9791168341630
발행일
2024.01.29
쪽수
268쪽
크기
134×2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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