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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감촉

『시간의 감촉』의 주인공 안나와 경선은 자매이지만 언니 안나는 1월생, 동생 경선은 12월생으로 출생한 해가 같다. 거의 동일한 생애주기 속에 있으면서도 일 년 정도는 안 보고 지낼 정도로 서로 무심한 사이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작품에서 1부 ‘몸의 사건들’은 예순다섯 살 생일을 맞은 안나, 그리고 전남편 P의 부고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된 경선의 아침 장면으로 시작한다. 퇴직 연금 생활자로 일 년 전 고층 아파트에 이사온 안나의 “무위”와 “단조로움”(15쪽) 속 고요한 모습, 그리고 그와 대비되게 오피스텔의 암막 커튼 속에서 “무력감”과 “압박감”(17쪽)을 느끼며 잠에서 깬 경선의 모습을 통해 같은 신도시에 살면서도 생활 처지가 다른 두 자매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를 암시한다. 특별한 용건이 있지 않는 한 만나지 않는 두 사람이 조우하게 된 곳은 뜻밖에 병원이다. 경선의 건강검진 결과 신장에서 종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안나는 예정에 없던 보호자가 되어 경선을 간병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경선 대신 경선의 손녀 다니엘까지 돌보게 되면서 그간 대체로 잔잔하게 흘러갔던 혼자만의 삶에 변화를 맞는다.

시간의 감촉

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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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기쁨, 슬픔과 환희가 교차하는 그 모든 문장의 감촉이 눈부시게 찬란하다.” _황인찬(시인)

『새의 선물』 『빛의 과거』를 잇는 ‘시간 3부작’의 대미 ‘왜 여전히 은희경인가’에 대한 결정적 대답

성격도 외양도 너무 다른 자매 안나와 경선. 서로의 몸에 새겨진 미지의 기억들과 삶의 저녁에 맞이하는 모든 ‘첫’의 순간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미래를 함께 펼쳐 보이는 이야기

은희경이 장편소설로는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 2019) 이후 7년 만에 반가운 신작 『시간의 감촉』을 펴낸다. 은희경은 누구인가?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로 누적 발행 100쇄를 돌파하는 신화를 이룩해낸, 삼십여 년간 소설집 일곱 권과 장편소설 여덟 권을 선보이며 한시도 소설쓰기를 멈추지 않은 현역.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그 내면들로 얽힌 사회의 모습을 감상성 없는 냉철한 시선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사유, 치밀하게 벼린 문장으로 풀어헤치며 뭇 독자마다 애정하는 작품이 하나같이 다른 작가. 발표하는 작품이 곧 사건이고 언제나 새로움을 선사하는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거장. 그런 작가가 계간 『문학동네』 2024년 가을호부터 2025년 가을호까지 연재를 마친 후 숙고의 시간을 거쳐 다듬어 펴내는 『시간의 감촉』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몸’이라는 조건하에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안나와 경선이라는 자매의 모습을 통해 진진하게 펼쳐 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시간의 감촉』의 ‘작가의 말’에서 “한 사람의 몸에 담긴 시간과 공간과 사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밝힌다. “발견과 성장의 여정”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장편이 “『새의 선물』과 『빛의 과거』”를 잇는 “‘시간 3부작’”의 대미라고도 말한다. 『시간의 감촉』은 사반세기 넘게 회자되며 여전히 뜨겁게 읽히고 있는 데뷔작 『새의 선물』과 과거의 편집을 통해 한 세대의 어둠을 빛으로 되살려낸 근작 『빛의 과거』를 거쳐 이 시대에 도달한 새로운 클래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현재형 시제로 쓰인 문장이 불러일으키는 동시대적 시간 감각, 타인의 살갗과 내면 모두를 감각하게 하는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장면 장면의 디테일, 삶과 죽음의 사유로써 잊지 못할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이번 작품은 은희경을 따라 읽어온, 혹은 처음 접하는 독자 모두에게 ‘결정적 소설’로 다가가리라 믿는다.

1부 몸의 사건들 _007
2부 고독과 매혹 _119
3부 우리의 첫 _187
4부 언젠가 멋진 날 _307

작가의 말 _378

저자 : 은희경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장미의 이름은 장미』,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빛의 과거』,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 『또 못 버린 물건들』 등이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책 속으로

몸에 관한 한 타인은 결코 개입하지 못한다. 남이 볼 때 남루하든 비참하든 한심하든 몸의 당사자에게만 유일하게 감각되는 고유의 삶인 것이다. _14쪽

태어남과 함께 몸에 새겨진 생존의 본능이 있듯이, 필멸자로서 죽음에 연착륙하는 본능의 장치가 인간에게 내장돼 있는 건 아닐까. 어디에서 그걸 찾아야 하는 걸까. _65쪽

경선이 기다린 건 어떤 한 계절이 아니었다. 계절의 주기와 시간의 흐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온몸으로 실험하고 느껴보고 싶었다. _113쪽

몸의 일상은 현실의 시간대에서 변해가지만, 언젠가 포착한 적 있었던 꿈과 이상의 시간은 그 나름의 도착지를 향해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_284쪽

우리 모두는 고통을 겪고 또 해결하면서 현실을 살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변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간은 어딘가에서 왕국을 건설하고 사계절을 보내고 있다. 내가 생각한 진실과 사랑이 그런 방식으로 지켜져서 훗날의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그들이 그걸 믿는다면 죽음 또한 소멸이 아닌 시간의 계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_286쪽

‘첫’은 ‘가장 오래된’이다. 안나와 경선의 ‘첫’은 점점 ‘가장 오래된’으로 수렴해간다. 경선의 말처럼 그 모든 게 다 사라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은 매 순간이 ‘첫’이다. 안나와 경선에게도 첫 순간은 수없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경선이 틀렸다. ‘우리의 첫’에 대한 기억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최근’과 ‘우리의 다음’이 되기도 한다. _357쪽

한 사람의 몸안에는 수많은 장소와 시간이 들어 있다. 몸은 기쁨과 고통과 욕망과 상실의 부화장이고 사랑의 꿈과 왜곡을 간직한 도서관, 마지막 삶이 거처할 최후의 집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재로 사라진다. 개체의 시간을 끝내고 무한에 섞여드는 여정이다. _373쪽

추천사

황인찬 (시인) 시간이란 우리 몸에 지층처럼 쌓여 결코 숨길 수도 지울 수도 없는 흔적이 되는 한편, 강물처럼 흘러 손에는 곧 마를 한줌으로 남는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처럼 쌓이고 흐르는 시간을 돌아보고 매만질 커다란 손과 깊은 눈이리라. 『시간의 감촉』은 우리 살갗에 남는 시간의 흔적을 섬세하게 살펴보고, 정교하게 다듬으며 지나간 시간 전체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고통과 기쁨, 슬픔과 환희가 교차하는 그 모든 문장의 감촉이 나에게는 눈부시게 찬란하다.

ISBN
9791141617226
발행일
2026.06.22
쪽수
384쪽
크기
133×2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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