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질문의 추천

건축의 K : 건축가의 시선으로 읽는 K문화, 그리고 K건축 이야기

얼마 전(9월 17일) 공주의 우리 서점 ‘오래된 질문’에서 이 책 저자들이 북토크를 했습니다. ‘건축의 K’를 사전에 읽어 보았는데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천일야화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꾸며진 ‘한국 건축학 개론’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건축물을 짓는 겁니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겨나는 것이란 한국 건축의 정수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은 춘천에 지은 제따와나 선원 처럼 이전에 볼 수 없었든 건축물을 짓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찰을 지은 것이 아니라 ‘혁신’을 지은 것이었습니다. 그날 북토크 후기가 곧 추천평입니다. 아래에 놓아 두었습니다

----추천평 또는 북토크 후기---

어릴 적 살던 시골에는 TV가 있는 곳이 둘이었습니다. 한곳은 초등학교 숙직실이었고, 다른 한곳은 재철(가명)이 형네 집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 올라가 공장엘 다니던 재철이 형 누나들이 TV를 집에 안겼습니다. 중학교 안 보내줬다고 원망만 할 법도 한데…. 김일 프로레슬링 경기가 열리는 날 재철이형 네 집은 붐볐습니다. 마을 사람들 누구나 좀 조아려가면서라도 이 경기만큼은 놓지치 않고 싶어 했습니다. TV 수상기가 마루로 나왔고 마당에는 멍석이 깔렸습니다. 재철이형 아버지의 헛기침 위세가 이어졌습니다. 17일 저녁 임형남-노은주 건축가가 저희 서점 ‘오래된 질문’에서 북토크를 열면서 김일 선수 레슬링 경기를 보던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참가자가 많아지는 바람에 마당 한가운데에 돗자리가 깔린 모습을 이른 말입니다. 가온건축을 운영하는 두 건축가는 서양미술을 전공했지만 한국건축에 진심입니다. 그 진심을 최근 펴낸 ‘건축의 K’에 오롯이 담았습니다. 한국건축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두 건축가가 강연 머리에 소개한 이야기는 한국 건축의 정신을 핵심적으로 드러내 줍니다. “찻잔 받침을 만들 때, 일본 장인은 전국을 다니면서 진짜 좋은 나무를 구하고, 그걸 오랜 시간 건조시키고, 좋은 연장을 골라 목욕재계하고 정성스럽게 파서 완성한 다음 그걸 놓고 차를 마시며 완상합니다. 반면 조선의 장인은 오른손을 뻗어 잡히는 아무 나무나 줍고, 왼손을 뻗어 잡히는 아무 연장을 들고 막 파서, 금세 완성하고 탁 던져놓는다고 합니다. 일본의 공예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조선의 경우에는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장인들은 한국 장인이 만든 물건에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낀답니다. 아마도 그 무언가는 자연스러움을 말하는 듯 합니다.” 그 자연스러움은 이질적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두 건축가가 제주의 김녕 바닷가에 지은 ‘까사 가이아(Casa Gaia, 사진)’는 그 전형적인 반영입니다. 바다를 가리지도 않게, 멀리에 봉긋한 오름에 부딪치지 않게 지었습니다. 그 결과,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집이 됐습니다. 왜 이런 건축을 하는지에 대한 두 건축가의 설명은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기후변화 시대라는데, 서양의 어느 사상이 우리 조상만큼 자연친화적이고, 상생적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건축이란 땅에 신세를 지는 일입니다. 오랜 시간 바람과 햇빛만을 얹고 지내던 땅을 건드리고 그 위에 제법 무거운 구조물을 얹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땅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개토제를 지내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고유제를 지냈습니다.” 두 건축사는 통념을 깨는 건축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 파격은 춘천에 지은 사찰 제따와나 선원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이건 ‘사찰’을 지었다기 보다 ‘혁신’을 지었다는 편이 옳을 겁니다. 30만장의 벽돌만으로 지어 서양의 고대 유적을 연상하게 합니다. 사찰의 그 어디에도 한옥 지붕과 한옥 기와가 보이질 않습니다. 현대식으로 지었지만 저변에 깔린 구조와 정신은 불교의 전통을 빠짐없이 구현했습니다. “기존 사찰과 모양은 완전히 다르지만, 구례 화엄사처럼 세 번 꺾어져 들어가는 전통 가람 배치를 반영했습니다. 종교 공간의 본질을 어디론가 들어가서 누구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건 스승일 수 있고 신일 수 있습니다. 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나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배치를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제따와나 선원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자연스러움이라는 한국 건축의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하는지도 모릅니다. 제따와나는 제다 왕자의 숲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기원정사(祇園精舍)라고 합니다. 그 기원정사에 한옥지붕과 한옥기와가 있었을 리 없습니다. 이런 고정관념을 물리친 사찰은 주지인 일묵스님의 대도량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합니다. 두 건축가의 제안에 단 한 번의 거부 반응도 없었다고 합니다. 일묵 스님은 서울대 수학과 박사과정 중이던 1990년대 중반 “죽음이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세속 공부를 계속할 의미가 없다”며 홀연 잿빛 승복을 입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또는 이후에 서울대 불교학생회 회원들이 10여명 집단 출가해 신문에 대서특필된 바 있습니다. 이들을 구도의 길로 이끈 책이 ‘대자유인’이었다고 합니다. 두 건축가의 설명처럼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놓아두는 것이 한국 건축이라면 어딘가 닮아 있습니다. 프랑스 국빈 만찬 무대에서 재킷과 구두를 차례로 벗어던지고 맨발로 노래하던 K팝 가수 화사도 이런 DNA를 가졌겠죠.

건축의 K : 건축가의 시선으로 읽는 K문화, 그리고 K건축 이야기

건축의 K : 건축가의 시선으로 읽는 K문화, 그리고 K건축 이야기

노은주 임형남 지음 · 도서출판가지 · 202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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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하는 건축가 노은주·임형남이 K문화를 읽는 법

:: 건축으로 읽는 한국인의 마음 :: K문화의 공간적 뿌리를 탐색하다

세계가 열광하는 K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책은 그 질문을 건축의 시선으로 탐구한다. 건축가 노은주·임형남은 한옥과 사찰, 고택과 박물관, 정원과 광장, 도시의 골목을 따라가며 오랫동안 한국 건축과 예술품에 스며든 감각과 사고의 방식을 읽어낸다. 자연과 경계를 나누지 않는 공간, 흐르듯 이어지는 구조, 드러내기보다 관조하는 미학,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예술, 시간을 품는 건축의 태도 속에서 ‘한국다움’의 근원을 찾는다. 종묘와 한양 도성, 화엄사와 폐허, 마당과 마루는 물론 반가사유상, 백자, 한글, 고지도, 산조와 살풀이춤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건축-공간-예술을 하나의 텍스트로 이어 읽으며 K문화의 깊은 토대를 살핀다. 건축을 통해 한국인의 마음과 세계관을 새롭게 비추는 흥미로운 문화 읽기다.

제1장
건축으로 읽는 ‘K’ 유전자
자연은 어떻게 건축이 되는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다
#한옥 #금산주택 #도산서당

자연에서 생겨나다
#이지당 #한양 #까사 가이아

건축에 자연을 담다
#좋은 글 #좋은 건축 #차경 #선의 집

대화하듯 잇는 건축
#종묘 #내소사 설선당 #프라즈나의 집

드러내지 않고 관조하다
#닭실마을 #충재 #청암정 #서석지 #주일재

땅의 결을 살리다
#화엄사 #지리산 #들어가는 길

‘추상화’로 구현한 독창성
#석탑 #고려청자 #조선백자

새로운 정신을 새로운 양식으로
#염거화상 부도 #도의선사 부도 #철감선사 사리탑

시간이 완성하는 랜드마크
#낙산공원 #한양 도성

제2장
미학의 켜, 시대의 풍경
건축은 어떻게 시간을 담는가

폐허의 미학, 사라진 시간의 기억
#폼페이 #무녕왕릉 #진전사 터 #대동사 터

정중동의 미학
#살풀이춤 #종묘

존경받는 어른 같은 집
#양동마을 #송첨 종택

단정하고 실용적인 공공건축
#임영관 삼문 #칠사당

광장이 되는 열린 공간
#광화문광장 #국회 앞 #여의도공원

일상에 자유롭게 스며든 정원
#창덕궁 후원 #가쓰라리큐 #졸정원

‘한국성’의 건축적 구현
#김수근 #공간 사옥 #세이장

시대를 품은 담백한 건축
#출판문화회관 #홍순인

공간을 나누고 공유하는 지혜
#김명관 고택 #명재 고택 #장연재

제3장
K미학의 원형을 찾아서
무엇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만드는가

그 시대의 얼굴
#반가사유상

차가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다
#세한도 #추사 김정희

세상을 똑바로 보다
#대동여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동국지도

세상에서 첫째가는 글
#한글 #훈민정음해례본

땅의 장단과 어울리다
#산조 #소리의 길 #부석사

비움으로 가득 채우다
#마루 #대청마루 #누마루

이어주고 품어주는 또 하나의 방
#마당 #한옥 마당 #명재 고택

우리 시대의 한옥
#개량 한옥 #민병옥 가옥 #박길룡

생각의 미로를 헤매다 오래된 질문을 만나다
#한옥 개조 #철학 서점 #오래된 질문

사진 및 그림 출처

저자 : 노은주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2014년 ‘루치아의 뜰’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우리사랑상을, 2020년 ‘제따와나 선원’으로 아시아건축사협의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공간을 탐하다』, 『건축탐구 집』, 『도시 인문학』,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사람을 살리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무처럼 자라는 집』,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 풍경 화첩』 등이 있다. EBS <건축탐구-집>에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고, 최근 ‘이야기로 집을 짓다(이집)’라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했고, ‘금산주택’으로 2011년 공간디자인대상,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제따와나 선원’으로 2020년 아시아건축가협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건축탐구 집』,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도시 인문학』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사람을 살리는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등 15권의 저서가 있고,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에 건축칼럼을 집필 중이다. 또한 EBS 〈건축탐구-집〉에 프리젠터로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금산주택(House in Geumsan)〉 〈루치아의 뜰(Lucia's earth)〉, 〈까사 가이아(CASA GAIA〉, 〈제따와나 선원(Buddhist temple ‘Jetavana’〉 등이 있다.

저자 : 임형남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2014년 ‘루치아의 뜰’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우리사랑상을, 2020년 ‘제따와나 선원’으로 아시아건축사협의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공간을 탐하다』, 『건축탐구 집』, 『도시 인문학』,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사람을 살리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무처럼 자라는 집』,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 풍경 화첩』 등이 있다. EBS <건축탐구-집>에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고, 최근 ‘이야기로 집을 짓다(이집)’라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했고, ‘금산주택’으로 2011년 공간디자인대상,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제따와나 선원’으로 2020년 아시아건축가협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건축탐구 집』,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도시 인문학』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사람을 살리는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등 15권의 저서가 있고,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에 건축칼럼을 집필 중이다. 또한 EBS 〈건축탐구-집〉에 프리젠터로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금산주택(House in Geumsan)〉 〈루치아의 뜰(Lucia's earth)〉, 〈까사 가이아(CASA GAIA〉, 〈제따와나 선원(Buddhist temple ‘Jetavana’〉 등이 있다.

“K는 공간적 감각이다.”

BTS와 블랙핑크는 왜 광화문광장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컴백을 알렸을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한 한국의 일상 공간들은 왜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을까. 알 듯 모르겠는 ‘K문화’의 저력에는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전통예술과 공간의 힘이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닐까.

《건축의 K》는 오늘날 세계인의 문화적 취향으로 자리잡은 ‘K’, 즉 한국과 한국적인 것의 본질이자 뿌리 정신을 건축의 언어로 읽어보려는 시도다. EBS 방송 〈건축탐구-집〉, 그리고 20여 권의 저작을 통해 집(또는 공간)의 존재 이유와 건축가의 존재 이유를 동시에 알려온 건축가 노은주·임형남 부부가 한국미의 원형을 품은 건축과 예술품, 현대 도시 공간들, 그리고 대중문화 속 ‘K’의 의미를 새기며 쓰고 그린 것을 모아서 묶었다.

“우리 역사에 그동안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탁월한 문화적 뿌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운 좋게 세상에 드러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우리가 품었던 문화적 자양분이 발아해 드디어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6p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건축으로 읽는 ‘K’ 유전자〉. ‘자연은 어떻게 건축이 되는가’라는 소제목을 달고 한옥과 사찰 등 전통 건축물이 지어지는 방식을 통해 우리의 오래된 공간 감각을 탐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무척 오래되고 단단하고 여름과 겨울의 기후 차이가 커서 이웃한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 건축에는 북방식 온돌과 남방식 마루가 함께 등장하고, 마루와 마당 등 자연을 향해 열린 듯 닫힌 공간이 있다. 나무 주무르듯 능숙하게 돌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했고, 건축은 산지와 물길을 따라 집들을 배치하면서 공간이 흐르는 듯한 자유분방함을 띤다. 저자는 이렇듯 ‘경계를 넘나드는’ 공간의 특성이 K문화의 유전자로 자리 잡아 문화적 국경이 사라진 21세기에 꽃을 피우고 있다고 해석한다.

제2장 〈미학의 켜, 시대의 풍경〉은 건축의 또 다른 재료인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건축은 어떻게 시간을 담는가’라는 소제목 아래 한국적 미학과 공간 문화가 구현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박물관에 보관된 유물과는 다르게, 실물로 존재하며 자연의 가혹한 변화를 몸으로 버티고 역사의 시간을 몸에 새긴 채 서있는 건축물은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던 시대와 당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오래된 집, 길, 도시 구조에서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담은 K미학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저자가 이끌고 간 폐허와 고택, 공원과 광장, 한국성을 담은 현대 건축물 앞에서 그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한국다움’을 만드는 가장 큰 재료는 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제3장 〈K미학의 원형을 찾아서〉는 저자들이 건축가로 성장하는 동안 특별한 영감과 감동을 받았던 전통예술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일상 공간에서 미학을 발견하는 법을 다룬다. ‘무엇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만드는가’라는 소제목 아래 반가사유상과 세한도, 한글, 전통음악 산조, 고지도 이야기부터 마당과 마루, 한옥 개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적·공간적 텍스트를 통해 한국인의 감각과 세계관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최근 크게 성공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온 한약방, 목욕탕, 골목길 같은 우리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에 외국인들이 특별한 관심을 보인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익숙하다고 무심했던 우리 주변에 대한 시선도 새삼 각별해지면 좋을 것이다. -8p

저자들은 너무 익숙해서 그 소중함을 모르고 함부로 개발의 손을 대곤 하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공간들에 대해서도 관심과 애정을 당부한다. 세계는 이제 한국의 음악과 이야기뿐 아니라 공간 감각과 미학에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K건축’이라고 자부하며 내놓을 수 있는 모습, 그리고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그 땅의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 형성된 공간의 감각 속에서 자라난다. 그 감각을 건축의 언어로 읽어보고자 한 이 책의 시도가 K문화를 사랑하고 소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한국 전통예술과 공간문화에 관심이 있는 교양 독자들에게 새로운 읽기의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ISBN
9791193810163
발행일
2026.06.22
쪽수
248쪽
크기
128×188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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